한 세기 넘게 머나먼 이국땅에서 잠들어 있던 조선의 병풍 두 점이,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복원돼 우리 앞에 다시 섰다.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다시 살려낸 그림 속 희망’은 문화유산 보존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자리가 되고 있다.
이국에서 돌아온 고전의 풍경
조선 후기 문인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은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철학적 이야기로 시대를 초월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 소설의 명장면을 담은 **‘구운몽도 병풍’**은 1910년대, 이화학당 선교사였던 마리 엘리자베스 처치를 통해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100년 넘는 세월 동안 포틀랜드미술관에 보관되어 왔다. 그리고 마침내, 복원을 마치고 국내 관객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국립고궁박물관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6월 25일부터 7월 20일까지 ‘다시 살려낸 그림 속 희망’ 전시를 통해, ‘구운몽도 병풍’과 ‘백동자도 병풍’ 두 점을 공개한다. 이 전시는 2023년 10월부터 약 1년간 진행된 보존 처리 작업의 결과를 선보이는 자리로, 해외에 있던 한국 문화재를 복원하고 되돌려보는 의미 있는 시도다.
병풍 속에 숨어 있던 조각들
구운몽도 병풍은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차례 보수 과정을 거치며 원래의 색감과 구성이 손상된 상태였다. 복원 작업을 진행하면서 병풍 속에서는 뜻밖의 유물들이 발견됐다. 1913년 종묘 영녕전에서 춘향대제 후 남은 음식을 기록한 문서, 용 그림의 초본, 그리고 1933년 발간된 신문 등이 그것이다. 이런 자료들은 단지 보존 대상 이상의, 당시 생활문화의 단서를 제공하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박물관 측은 병풍의 그림 배치가 소설의 전개와 맞지 않는 부분을 바로잡고, 병풍 제작 당시 사용된 직물 등을 참고해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복원했다. 특히 기존에 감춰져 있던 그림들을 드러내기 위해 병풍 폭을 조정하고 색을 정제하며, 관람객이 구운몽의 서사와 회화적 해석을 온전히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백동자의 웃음 속에 담긴 평안과 기원
함께 전시되는 **‘백동자도 병풍’**은 백 명의 아이들이 평화롭게 노는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자손 번영과 풍요를 상징하는 민속 회화다. 병풍 속 아이들은 원숭이와 함께 놀며 지혜를 상징하거나, 어른의 행차를 흉내 내며 미래를 꿈꾸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병풍은 미국 덴버미술관이 1970년 뉴욕의 아시아 고미술 갤러리를 통해 수집했으며, 그 반출 경로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보존 처리 중, 병풍 틀에 일본에서 발행된 1960년 신문이 덧발라져 있는 것이 발견되며, 이 병풍 역시 19~20세기에 제작되고 1960년대 이후 수리된 뒤 미국으로 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공 안료로 덧칠된 부분은 제거되고, 오염물질은 정리되어 보다 깨끗하고 자연스러운 색감으로 되살아났다.
되살아난 유산, 문화의 연결고리로
국립고궁박물관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이 전시가 단순한 복원을 넘어, 해외에 있는 우리 유산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병풍이라는 회화 매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염원과 문화, 예술적 감각이 집약된 복합 콘텐츠다. 복원을 통해 본래의 아름다움을 회복한 이 유물들은 단절됐던 시간을 잇는 다리가 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예술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담고 있는 병풍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문화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잊혀진 이야기의 숨결을 가까이에서 느끼게 한다. 7월 20일까지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