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ne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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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시간, 빈티지 시계의 부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순한 복각을 넘어, 이들의 귀환은 현대 시계 시장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브랜드가 시간을 이기기 시작했다

한때는 사라졌던 이름들이다. 보베(Bovet), 랑에 운트 죄네(A. Lange & Söhne), 자케 드로(Jaquet Droz), 율리스 나르덴(Ulysse Nardin) 같은 브랜드들은 한 시대를 풍미하고도 역사 속에 묻혔었다. 하지만 오늘날 이들은 다시 하이엔드 시계 시장의 중심에 서 있다. 지금의 위상만 놓고 본다면 그들이 겪었던 침체기는 아련한 과거일 뿐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단종 모델 복각을 넘어서 오래된 브랜드들이 부활을 선언하고 있다. 빈티지 워치에 대한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면서, 다시 한 번 이들의 이름이 시장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유니버설 제네브, 다시 빛나다

그중 가장 뜨거운 부활 소식은 단연 유니버설 제네브(Universal Genève)다. 조지 컨 브라이틀링 CEO가 직접 이끄는 이 부활 프로젝트는 브랜드 마니아들의 심장을 뛰게 만든다. UG 또는 ‘U-Genny’로 불리는 이 브랜드는 한때 파텍 필립의 대안으로 주목받았고, 영화 제작자와 은행원, 조종사 등 다양한 타깃을 위한 시계를 제작하며 특유의 정체성을 굳혀왔다.

특히 1954년 제랄드 젠타가 디자인한 ‘폴라우터(Polerouter)’는 UG의 아이콘으로 남아 있다. 반자기장 성능을 갖춘 이 시계는 북극 항로를 이용하는 항공기 승무원들을 위해 제작되었고, 단순하고 우아한 다이얼은 지금도 미학적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부활은 우연이 아니다

조지 컨은 단순한 재출시가 아니라, 브랜드 철학의 재정립을 시도하고 있다. 30여 명의 빈티지 수집가로 구성된 자문단의 의견을 경청하며 ‘접근 가능한 캐주얼 럭셔리’라는 새로운 포지셔닝을 꾀한다. 물론 여기서 ‘접근 가능’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출시 예정 모델의 가격은 2,500만 원대로 책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전략은 갈레(Gallet)에도 적용되고 있다. 2026년부터 브라이틀링 부티크에서 500만~800만 원대 모델을 선보일 계획으로, 고급 브랜드에서 가격 진입 장벽에 주저하던 고객층을 공략한다. 갈레는 라이트 형제가 첫 동력비행에 성공했을 때 사용한 시계 브랜드로도 유명하다.

다시 쓰는 시계의 역사

파브르 뢰바(Favre Leuba)의 부활은 그 자체로 시계사의 한 페이지를 다시 쓰는 일이다. 1737년 설립된 이 브랜드는 고도와 기압을 측정할 수 있는 ‘비브왁(Bivouac)’ 모델로 기술적 혁신을 이끌었다. 한때 LVMH와 타이탄 등 여러 소유주를 거치며 부침을 겪었지만, 2023년 KDDL의 자회사 실버시티 브랜드가 인수하며 반전을 꾀하고 있다.

CEO 파트릭 호프만은 빈티지 시계의 인기와 시장 변화가 오히려 기회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의 리더십 하에 출시된 ‘딥 블루’, ‘치프 크로노그래프’, ‘시 스카이’ 등의 모델은 300만~700만 원대로 구성되어, 접근성과 기술력의 균형을 꾀한다.

미국의 복귀, 벤루스의 귀환

미국 3대 시계 브랜드 중 하나였던 벤루스(Benrus)도 돌아왔다. 한때는 케네디 대통령, 스티브 맥퀸, 베이브 루스 등이 착용했던 상징적인 브랜드다. 현재는 사모펀드의 자금으로 되살아났고, 뉴욕 맨해튼 본사까지 복원했다.

대표 모델은 <블리트>에서 맥퀸이 착용했던 3061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3061 GT’와 베트남전에서 영감을 받은 군용 시계 ‘DTU 팬텀’. 정통 군용 시계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이 라인업은 밀리터리 매니아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가격은 100만~200만 원대로 구성되었고, 본격적인 재출시는 2025년 하반기로 예정돼 있다.

빈티지는 트렌드가 아닌 방향이다

지금도 수십 개의 브랜드가 조용히 이름을 되찾고 있다. 시계 업계의 부활은 단순히 옛 것을 되살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술과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가격대, 디자인, 기술력, 헤리티지 모두를 갖춘 이 부활 브랜드들은 이제 시계 시장의 ‘민주화’를 이끌고 있다.

디자이너 패션이 그랬듯, 하이엔드 시계의 세계도 더 많은 이들에게 열린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엔 ‘과거를 되살리는 브랜드’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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