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화려한 간판도, 세련된 건축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수많은 사람들이 신고 있던 ‘검정 운동화’였습니다. 더 이상 흰 운동화만이 정답이 아닌 시대, 도쿄는 또 한 발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패션 언어는 통했다
지난 5월, 일본 도쿄에 도착한 첫날부터 저는 일상의 디테일에 적응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변기 물 내리는 버튼을 찾는 데만 몇 분이 걸렸고, 피팅룸에서 건네받은 마스크를 어떻게 착용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죠.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도쿄 사람들의 패션이었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스타일은 직관적으로 다가왔거든요.
도쿄의 패션은 하나의 룩으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로웠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유난히 자주 눈에 띈 아이템이 있었는데요. 바로 ‘검정 운동화’였습니다. 화려한 스니커즈 전성시대가 지난 지금, 심플하고 실용적인 검정 운동화가 도쿄 스트리트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검정 운동화의 세련된 존재감
물론 처음에는 대단한 인상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블랙 스니커즈네’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몇 날 며칠 도쿄 곳곳을 다니며 계속 눈에 들어오다 보니, 결국 저도 하나 구매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고른 건 아디다스 ‘태권도’ 모델의 올블랙 버전. 슬림한 라인과 날렵한 실루엣은 생각보다 훨씬 다채로운 스타일링이 가능했고, 특히 여름철 미니스커트나 슬립 드레스에 매치했을 때 예상치 못한 조화를 보여줬습니다.
도쿄에서 특히 인기를 끌고 있었던 건 일본 대표 스니커즈 브랜드 ‘오니츠카타이거’였습니다. 헤일리 비버도 즐겨 신는 멕시코 66은 물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스크로우(Sclaw) 라인까지 다양하게 눈에 띄었죠. 여기에 아디다스 삼바, 나이키 샥스, 뉴발란스 574와 같은 단색 라인의 글로벌 브랜드 제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흰 운동화 시대는 저물고 있을까
지난 10년간, 운동화 하면 흰색이 정석이었습니다. 갓 꺼낸 듯 새하얀 스니커즈가 스타일의 정점을 찍었죠. 하지만 지금 도쿄는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흰 운동화의 깔끔함 대신, 검정 운동화의 실용성과 균형감각을 택한 것이죠.
검정 운동화는 ‘운동화 같다’는 인상을 줄이면서도, 오히려 더 다양한 룩에 유연하게 녹아듭니다. 정제된 캐주얼, 어반 스트리트, 혹은 미니멀 오피스 룩까지 모두 커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흰 운동화보다 더 오래 갈 아이템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쿄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
도쿄에서 검정 운동화 하나를 사서 돌아왔을 뿐인데, 사무실에 복귀하자마자 동료들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운동화 안 신던 네가?” 하는 말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죠. 확실한 건, 저의 취향에 작지만 강한 전환점이 생겼다는 것.
이제는 운동화장을 둘러볼 때 자연스럽게 검정 라인을 먼저 보게 되는 저를 보며 생각합니다. 아마 운동화 덕후가 되어가는 건지도요. 그렇게 된다면, 그 시작은 도쿄였습니다. 그 도시의 세련된 사람들과 발끝 스타일 덕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