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클래식의 정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하나의 장소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곳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 그리고 시간을 입은 서사의 공간입니다. 랄프 로렌에게 햄튼은 바로 그런 곳입니다.
햄튼이라는 장소가 가진 문학적 감성
랄프 로렌이 사랑한 햄튼은 단순한 휴양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소설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미국의 상징이자, 시간이 켜켜이 쌓인 정서적 풍경입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 그려지는 동부 해안의 낭만과 상실, 에드워드 호퍼의 정적인 풍경, 조앤 디디온이 기록한 해변 너머의 고독과도 맞닿아 있는 공간. 햄튼은 늘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랄프 로렌에게도 햄튼은 창조의 근원이 되는 장소입니다. 그는 때때로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으며 자연 속에서 깊은 사유와 영감을 얻습니다. 푸른 하늘, 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 바다 내음 가득한 공기 속에서 그는 그만의 아메리칸 드림을 다시 꺼내놓습니다.
런웨이에서 전시까지, 서사를 입은 브랜드
지난가을, 랄프 로렌은 햄튼의 한 목장에서 2025 스프링 컬렉션을 선보였습니다. 그 공간에는 초원을 거니는 말, 자연의 소리, 그리고 클래식한 감성이 어우러졌습니다. 퍼플 라벨부터 폴로, 칠드런 라인까지 아우르는 이번 컬렉션은 세대를 넘어 아메리칸 럭셔리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이 감성을 지속해 나갔습니다. 상하이에서 열린 ‘리시(Resee) 패션 익스피리언스’에서는 햄튼의 분위기를 도시 속에 옮겨 놓으며, 브랜드만의 내러티브를 글로벌 무대에 다시 펼쳐냈습니다. 단순한 쇼를 넘어, 이야기를 공유하는 하나의 ‘경험’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만난 햄튼의 풍경
6월 초, 서울 한남동 폴로 랄프 로렌 스토어에서는 ‘컬처 앤 아트 토크: 햄튼 문학과 예술 유산’이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위대한 개츠비』 번역가 김영하 작가와 『모던 키친』의 박찬용 에디터가 함께해 햄튼이 담고 있는 시간과 기억, 그리고 문학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김영하 작가는 랄프 로렌의 차별점으로 ‘이야기’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진정한 럭셔리는 복제할 수 없는 서사를 지닌 브랜드”라며, 햄튼이 상징하는 복합적 감정과 시대성을 랄프 로렌이 탁월하게 해석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햄튼이라는 공간은 그렇게 옷과 사람, 삶 사이를 잇는 하나의 문학적 무대가 되었습니다.
패션을 넘는 감각, 이야기로 완성된 경험
이날 행사 공간 역시 이야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화이트 트렐리스와 수국으로 꾸민 입구, 햄튼을 주제로 큐레이션된 아트 북, 그리고 랄프 로렌의 아내 리키 로렌이 직접 집필한 『The Hamptons: Food, Family, and History』에 등장하는 레시피로 구성된 케이터링까지. 공간 전체가 하나의 에세이처럼 구성되었습니다.
결국, 랄프 로렌이 보여주는 럭셔리는 스타일을 넘어선 ‘태도’입니다. 햄튼이라는 장소에 깃든 정서, 기억, 감동을 브랜드 언어로 풀어낸 그는 단순한 의류 디자이너를 넘어 진정한 이야기꾼이 되었습니다. 서사가 있는 패션,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정서야말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짜 럭셔리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