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 펠리페 올리베이라 밥티스타와 그의 아내 세브린은 파리 중심부에 리스본의 따사로운 햇살과 고유의 감성을 녹여낸 특별한 아파트를 완성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몽마르트르의 황홀한 전망, 예술과 수집품으로 채운 인테리어,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두 사람의 일상이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파리 중심에서 바라본 몽마르트르
패션 디자이너 펠리페 올리베이라 밥티스타의 3층 아파트는 파리의 생조르주 지구를 내려다보는 탁월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넓은 거실에는 프랑스식 대형 창문이 천장까지 이어지며, 햇살을 그대로 끌어들인다. 실크처럼 얇은 오스트리아산 커튼, 파란 줄무늬로 칠한 벽난로, 마리오 벨리니의 카말레온다 소파, 그리고 곳곳에 놓인 스킨답서스 식물이 조화를 이루며, 이 집을 한 폭의 그림처럼 만든다.
하이라이트는 해가 지고 나서다. 몽마르트르 언덕 위 사크레쾨르 대성당의 둥근 지붕이 분홍빛 하늘 아래 떠오르며, 밥티스타 부부의 아담한 테라스는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변신한다.
햇살을 좇는 디자이너의 선택
포르투갈 리스본 출신의 밥티스타는 빛에 대한 감각이 남다르다. 연평균 3,000시간의 일조량을 자랑하는 고향을 떠나 파리에 정착한 이후, 그는 햇살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오랜 패션 커리어 끝에 첫 가족 보금자리를 마련할 때, 그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은 ‘채광’이었다.
아내 세브린은 파리 현지인으로, 부동산 전문가들과의 수차례 실망스러운 미팅을 거쳐 결국 지금의 아파트를 발견하게 되었다. 부부는 처음 방문하던 날, 서로를 향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이미 20년 전 이 집 앞을 지나가며 “언젠가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라고 말한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고쳐 짓되, 지우지 않는다
아파트를 처음 접했을 때의 첫 인상은 다소 복잡했다. 다양한 시대의 장식이 중첩된 인테리어는 때로는 과해 보였다. 하지만 고딕풍 벽난로나 1920년대 거울로 장식된 복도 대신, 부부는 공간을 새롭게 정의하기로 했다.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을 강조한 구조, 개방적인 아치형 입구, 불필요한 벽 제거 등을 통해 통일감 있는 리노베이션을 진행했다. “모든 걸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이랬던 것처럼 보이길 바랐어요.” 리모델링을 총괄한 세브린의 설명이다.
파우더 블루로 칠한 벽과 천장은 이 집에 고요하고도 부드러운 분위기를 더한다. 오크 바닥과 조화를 이루는 부엌의 카푸치노 브라운, 욕실의 카키빛 톤도 섬세하게 조율됐다. 가장 큰 변화는 벽난로였다. 과거의 어설픈 개조 흔적을 지우고, 이제는 노란 줄무늬로 다시 태어나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예술과 수집품으로 완성된 풍경
밥티스타는 겐조에서 퇴임한 2021년 이후, 작품 활동에 집중해 회화와 판화 전시를 열었다. 그의 작품들은 거실 벽난로나 찬장 문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세브린은 온라인 경매와 SNS를 통해 1970~80년대 빈티지 가구를 찾아낸다. 마리오 보타의 조명, 에토레 소트사스의 테이블, 세르지오 로드리게스의 의자 등 고유한 감각의 수집품은 이 집의 미감을 완성한다.
이들은 세심한 디테일에 집착하면서도, 공간을 경직되게 만들지 않는다. 고등학생 아들의 18세 생일 파티에는 60명의 친구들이 이곳을 가득 메웠고, 부부는 옆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자유로운 파티를 허용했다. “솔직히 걱정됐지만, 파티가 끝난 후 아들이 집을 말끔히 치워놨더군요.” 세브린의 웃음 섞인 회상이다.
리스본으로의 귀향, 그리고 새로운 시작
밥티스타와 세브린은 현재 리스본으로의 이주를 준비 중이다. 두 사람 모두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지속하며, 두 도시를 기반으로 삶을 확장하려 한다. 벌써 정원이 딸린 초기 20세기 주택을 개조하기 시작했고, 세브린은 새로운 인테리어 디자인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파리 전경과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은 다시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매일 새롭게 느껴지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풍경이에요.” 세브린의 말처럼, 이 집은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 부부의 삶과 철학, 그리고 예술적 비전이 담긴 하나의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