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노무사 노무진>은 귀신을 보는 노무사 이야기다. 이 설정만 보면 다소 황당한 판타지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작품은 지금 한국 사회의 노동 현실을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 유쾌하면서도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웃음으로 시작해 뒷맛은 씁쓸하고, 판타지로 펼치지만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이야기다. 주인공 노무진(정경호)은 인생의 밑바닥을 찍고 노무사가 된 인물이다. 회사를 관두고 퇴직금을 비트코인에 쏟아붓고 빈털터리가 된 그는, 법학 전공을 살려 노무사로 전직하지만 손님 한 명 없는 ‘백수 전문가’ 신세다. 그러다 처제 나희주(설인아), 유튜버 고견우(차학연)와 함께 유령 컨설팅 회사를 꾸려 공장을 돌며 사기를 치는 일이 시작된다. 이들 셋은 안전불감증에 빠진 사업장에 ‘기관 점검팀’인 척 찾아가 돈을 뜯어내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사건이 벌어진다.
귀신과의 만남, 현실을 깨우다
사고를 당한 노무진은 죽음 직전에 한 소년의 영을 만나게 된다. 그는 전태일로 추정되는 인물로, 노무진에게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도우라”고 명한다. 이후부터 노무진은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들의 귀신을 보게 된다. 실습 도중 기계에 끼어 숨진 특성화고 학생, ‘태움’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간호사 등, 뉴스에서 자주 접한 익숙하고도 고통스러운 사연들이 그를 찾아온다.
처음엔 귀신을 쫓기 위해 시작한 산업재해 조사였지만, 노무진은 점차 ‘일하는 사람을 위해 힘쓰는 선비’라는 노무사의 본질에 다가간다. 현실의 부조리와 마주하고, 그 속에서 인간성을 회복해가는 과정이 유머와 상상력을 통해 펼쳐진다.
블랙코미디의 힘, 노동의 얼굴을 그리다
<노무사 노무진>은 산업현장의 위험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안전장치 없이 작업하는 노동자들, 규정을 무시한 관리, 그리고 반복되는 죽음들. 뉴스보다 생생하고, 현실보다 무거운 이 장면들은 강한 충격을 준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은 무겁지 않다.
소심하고 말 많지만 정 많은 노무진, 허세는 가득하지만 뻔뻔한 매력이 있는 고견우, 두 남자를 밀어붙이는 추진력의 나희주까지 캐릭터들의 조화는 드라마의 긴장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특히 현실과 환상, 상상과 빙의를 넘나드는 연출은 시청자에게 신선한 재미를 준다. ‘불타는 청바지 맨’과의 조우처럼 비현실적인 장면에서도 의미는 묵직하게 전달된다.
웃으며 마주하는 모순, 그리고 질문
이 드라마가 더 큰 화제를 모으는 이유는, 제작진과 방송사 주변의 실제 이슈 때문이다. 연출을 맡은 임순례 감독은 과거 활동가 노조 설립을 비판했다가 노조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MBC는 지난해 기상캐스터 오요안나의 직장 내 괴롭힘 사망 사건으로 사회적 비난을 받았다. 이런 맥락 속에서 <노무사 노무진>이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드라마’라는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주목받고 있다.
결국 <노무사 노무진>은 현실의 모순을 직면하게 만든다. 이 작품을 위선이라 비난할 수도,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 드라마가 노동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웃기기만 한 드라마’가 아니라, ‘고민하게 만드는 드라마’라는 것. 그러니 <노무사 노무진>을 보는 일은 곧 인간을, 사회를, 그리고 우리 자신의 모순을 공부하는 시간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