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한섬을 떠나며 패션계를 잠시 떠났던 정재봉 회장이 돌아왔다. ‘사우스케이프’라는 고급 골프웨어 브랜드를 앞세워 복귀를 선언한 그는, 다시 한번 국내 패션시장의 지형을 바꾸려 한다. 겸업금지조항 해제와 동시에 유통 확장에 나선 그의 행보에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다시 돌아온 ‘미다스의 손’… 겸업금지 끝난 정재봉 회장
정재봉 회장은 1987년 한섬을 창업해 ‘마인’, ‘타임’, ‘시스템’ 등 한국 여성복 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들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한섬은 연매출 5000억 원, 순이익 1000억 원을 자랑하던 알짜 기업으로 성장했고, 2012년 현대백화점그룹에 약 4200억 원에 매각되며 정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현대백화점그룹과 ‘겸업금지조항’을 체결해 패션 분야 복귀가 막혔다. 하지만 2024년부로 해당 조항이 종료되면서, 정 회장은 다시 한번 패션 무대의 조명을 받게 됐다.
사우스케이프, 골프웨어 시장의 새로운 변수
정 회장은 한섬 매각 이후 2013년, 경남 남해에 고급 골프 리조트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을 열며 리조트 사업에 집중했다. 그리고 2020년에는 골프웨어 브랜드 ‘사우스케이프’를 런칭, 서울 청담동에 플래그십스토어 ‘메종 사우스케이프 도산파크’를 오픈하며 의류 시장에 조심스럽게 복귀했다.
하지만 겸업금지조항 탓에 유통망은 한정적이었다. 백화점 입점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가두점과 온라인 중심의 제한적인 전개만 가능했다. 이 같은 제약이 사라진 지금, 정 회장은 보다 적극적인 유통 확장에 나설 수 있게 되었고, 그가 다시 ‘패션 황제’ 자리를 노린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현대에 이어 롯데까지… 유통 채널 확장 본격화
사우스케이프 골프웨어는 차별화된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무채색과 파스텔, 꽃무늬 등을 활용한 절제된 디자인은 젊은 골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가격대는 상의 20만~30만 원, 하의 30만 원대 수준이며, 선글라스, 가방, 모자 등 다양한 액세서리도 함께 구성돼 있다.
정 회장의 여성복 감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이 브랜드는 현재 현대백화점 주요 지점에 입점을 준비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 역시 사우스케이프 입점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겸업금지기간에도 러브콜을 지속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한된 전개 속에서도 폭풍 성장
사우스케이프는 이미 성과로 가능성을 증명했다. 2023년 3분기까지 매출은 164억 원으로, 전년 연간 매출을 넘어섰고 전체 사우스케이프 매출(514억 원) 중 32%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이는 골프장 운영 매출(44%)과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영업이익도 2021년 79억 원에서 2023년 3분기 기준 82억 원으로 급상승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들은 “사우스케이프는 고급 골프장의 이미지를 의류 브랜드로 완벽히 전이시켰다”며 “정 회장이 여성복을 제외한 스포츠 캐주얼, 고급 다이닝 등 비패션 부문까지 확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토종 디자이너 브랜드 부활 신호탄 될까?
정 회장과 함께 브랜드 전략을 이끄는 부인 문미숙 씨의 존재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들 부부는 한섬 시절부터 브랜드 감각과 경영 역량을 동시에 인정받아온 ‘디자이너-CEO 듀오’로, 이번 복귀가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시장 재도약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한섬의 전설에서, 사우스케이프의 선봉장으로. 정재봉 회장의 두 번째 전성기는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