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니캡’, 아일랜드어로 총알처럼 외친 자유의 이야기
언어를 잃는다는 것은 정체성을 잃는 것이다
북아일랜드의 공식 언어 중 하나는 아일랜드어다. 그러나 이를 매일 사용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하다. 영어 중심의 공교육과 행정, 그리고 오랜 영국 지배의 역사 속에서 아일랜드어는 ‘죽은 언어’로 취급받으며 점차 사라져왔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이 언어를 배우거나 사용할 기회조차 없이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사라지는 언어와 문화적 정체성에 반기를 든 이들이 있다. 바로 벨파스트 출신의 힙합 그룹 ‘니캡(Nî́čap)’이다. 이들은 아일랜드어로 랩을 하고, 억압적인 권력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가사에 담아 활동하고 있다. 그들의 음악은 단순한 청춘의 분출이 아닌, 언어와 문화, 자유를 되찾으려는 저항의 방식이다.
‘총알처럼 날아가는’ 아일랜드어 랩
리치 페피아트 감독의 영화 니캡은 실존 그룹 ‘니캡’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멤버인 모 차라, 모글리 밥, DJ 프로비가 실제 자신들의 역할로 직접 출연한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기 영화로, 초창기 니캡의 결성과 성장, 그리고 그들의 투쟁을 사실감 있게 그려낸다.
영화는 모글리가 어린 시절 무장 공화주의자였던 아버지 아를로(마이클 패스벤더 분)에게 아일랜드어를 배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모든 아일랜드어 단어는 자유를 위한 총알”이라는 아버지의 말은 모글리의 인생과 음악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후 청년이 된 그는 마약과 술에 빠진 삶을 살다가, 우연히 경찰서에서 아일랜드어 교사인 프로비를 만나며 인생이 바뀐다. 프로비는 그의 랩을 듣고 충격을 받고, 함께 그룹을 결성해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힙합으로 외치는 자유, 그리고 웃음 속 저항
니캡의 음악은 점차 젊은 세대에게 지지를 얻으며 반향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들의 성장에는 정치적 벽이 존재한다. 영국 통합을 지지하는 유니오니스트와 경찰, 무장 단체의 감시와 방해는 그들을 끊임없이 위협한다. 영화는 이들의 저항과 갈등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도, 무겁기만 한 분위기로 몰아가지 않는다.
니캡의 멤버들은 때로는 유치한 장난을 치고, 때로는 위기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특히 모글리와 모의 과장된 행동은 B급 코미디 주인공을 연상케 할 정도로 유쾌하며, 이는 영화 전체의 정서적 균형을 잡아주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백미는 니캡의 라이브 공연이다.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펼쳐지는 공연 장면은 단순한 음악 장면이 아닌, 정치적 해방구이자 해방의 제의처럼 다가온다. 마치 관객도 무대 위로 뛰어오르고 싶을 만큼 격렬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선댄스를 휘어잡은 뜨거운 랩의 선언
니캡은 제40회 선댄스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관객상을 수상했다. “화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폭발적인 에너지”, “정치적 목적을 재정의한 힙합”이라는 해외 매체들의 평가는, 이 영화가 단순한 성장 서사 이상의 울림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라져가는 언어를 무기로, 억압받는 정체성을 깃발로 삼아 일어선 청춘들의 이야기. 니캡은 힙합이라는 음악이 단순한 장르가 아닌, 진정한 언어이자 총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낸다.
영화 정보
제목: 니캡(Ní̄čap)
감독: 리치 페피아트
러닝타임: 105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국내 개봉일: 6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