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Dior)의 2025 프리폴 컬렉션은 자연과 공간,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깊이 있게 성찰했던 건축가 이타미 준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간결한 선, 균형 잡힌 형태, 절제된 여백 속에서 장인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이번 컬렉션은 그의 유작이자 자연의 일부인 대부도의 ‘방주교회’에서 그 조용한 아름다움을 포착했다. 이곳에서 디올은 단순히 의상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조우하는 순간을 하나의 감각적 서사로 풀어낸다. 바람이 스치는 곡선, 햇빛이 머무는 벽면, 그리고 그 안을 채우는 실루엣들. 디올의 드레스는 마치 방주교회와 조화를 이루며 ‘건축 속 옷’이라는 또 하나의 언어로 빛을 발한다.
절제된 미학과 구조의 조화: 이타미 준의 건축 철학과 디올의 조우
이타미 준은 생전 ‘자연이 곧 건축’이라는 철학을 몸소 실현해낸 인물이었다. 그의 건축물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바람과 빛, 물과 돌 같은 자연 요소와의 대화를 통해 완성되었다. 이번 디올 프리폴 컬렉션은 그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빛이 스며드는 방주교회 안에서 모델이 입은 실루엣은 마치 공간의 일부처럼 자연스럽다. 정제된 형태의 ‘레이디 디올’ 백, 부드러운 양가죽에 매크로까나쥬 스티칭이 특징인 ‘디올 카로 버킷’ 백까지, 모든 요소가 절제된 조형미를 통해 자연과 나란히 호흡한다. 디올은 패션이라는 매체를 넘어, 하나의 예술로서 자연을 재해석한다.
신체의 자유, 형태의 해석: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몸과 옷의 대화’를 다시 정의하다
이번 프리폴 컬렉션에서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옷의 형태를 정의하는 것은 바로 몸”이라는 말로 핵심 철학을 드러냈다. 1957년 크리스챤 디올의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착안한 이번 시즌은 꾸뛰르와 건축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며, 여성의 신체가 가진 곡선과 자유를 강조한다.
부드럽게 흩날리는 벨벳 드레스는 마치 정원 속에 그려진 풍경처럼 자연과 섞이고, 신체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형태는 틀을 강요하지 않고, 몸이 이끄는 대로 흐르며 유려한 곡선을 만든다. 이는 디올이 지향하는 ‘자유로운 우아함’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자연을 입는다는 것: 디올이 완성한 고요한 강렬함의 미학
이 컬렉션은 단순히 아름다운 의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섬세하게 수놓인 벚꽃 자수가 포인트인 드레스, 차분한 회색이 돋보이는 ‘디올 카로 버킷’ 백 등은 모두 ‘자연을 입는다’는 철학의 연장선상에 있다.
물, 바람, 돌, 하늘. 이 네 가지 자연 요소를 중심으로 구성된 이번 디올 프리폴 컬렉션은 인간과 자연, 패션과 건축이 만들어낸 하나의 서정적 조형물이다. 이는 화려함이 아닌, 조용한 강렬함으로 다가오는 아름다움이다. 디올은 여백 속에 감정을 담고, 절제된 형식 안에 자유를 그려냈다.
디올이 선택한 장소, 디올이 해석한 자연, 디올이 표현한 여성성. 그 모두는 오늘날 우리가 다시 바라보아야 할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정의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