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3’의 이명기. 그는 악당도, 선인도 아니었다. 그저 겁에 질린 한 인간이었다. 배우 임시완이 말하는 ‘명기’는 우리 안의 찌질함과 이기심을 마주하게 한다.
혼란 끝에 마주한 진짜 명기
임시완은 ‘오징어 게임 시즌3’에서 가장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 이명기를 연기했다. 그는 코인 투자 실패로 빚을 지고 도망 다니던 유튜버 출신의 인물로, 오징어 게임에 참가하며 극의 긴장감을 책임지는 주요 인물이다. 임신한 여자친구 준희와의 재회, 그리고 반복되는 배신과 자기합리화는 많은 시청자에게 충격을 안겼다.
“명기를 어떻게 연기할지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선하게 표현하면 너무 착해서 가식처럼 보이고, 악하게 연기하면 또 ‘그 정도는 아니다’라는 피드백이 왔죠. 그래서 결국 ‘겁쟁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나가게 됐습니다.” 임시완은 끝없는 해석의 고리를 거쳐 도달한 결론을 이렇게 설명했다.
악인이 아닌, 찌질한 인간
임시완은 명기를 ‘현실적인 악인’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나쁜 행동을 한 인물이 아니라, 공포와 불안, 자기방어 본능 속에서 점점 나락으로 빠져든 인물이었다. “명기의 행동은 겁과 찌질함에서 비롯됐어요. 특히 준희를 의심한 장면은 극심한 공포 속에서 나온 어리석은 선택이었고, ‘내 아이가 아닐 거야’라고 합리화하려는 자기 방어였죠.”
실제로 시청자들은 명기를 향해 큰 분노를 드러냈고, 이는 임시완의 SNS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팔로워가 늘긴 했는데, 대부분 명기를 욕하려고 온 것 같아요. 욕도 관심이니까 감사한 마음이에요. 어차피 욕먹을 거라면 제대로 먹자는 생각도 있었고요.”
“명기가 아닌 정의로운 인물도 해보고 싶어요”
시즌 2와 3을 통틀어 가장 정의로운 캐릭터로 꼽히는 ‘현주’(박성훈 분)를 언급하며 임시완은 색다른 배역에 대한 갈증도 드러냈다. “현주 같은 인물도 연기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해온 캐릭터들과는 결이 다르니까요.” 36세가 된 임시완은 여전히 선한 인상과 소년 같은 이미지를 지니고 있어, 극 말미에서 명기가 변화할 거라는 기대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명기가 ‘현주’를 죽이는 순간, 시청자의 기대가 완전히 꺾였을 것이라 말했다. “그 장면 이후에도 끝까지 봐주신 분들은 인내심이 대단한 거죠. 사실 저도 명기에게 기대하던 변화는 그 시점에서 접었습니다.”
새로운 얼굴, ‘킬러 사마귀’로의 변신
‘오징어 게임’의 겁쟁이 명기를 뒤로 하고, 임시완은 넷플릭스 영화 사마귀를 통해 이미지 전환을 시도한다. 이는 영화 길복순의 스핀오프작으로, 그는 킬러 조직 MK엔터 소속의 킬러 ‘사마귀’ 역할을 맡았다. 이 찌질하고 이기적이었던 명기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다.
“이번 작품을 통해 저를 처음 알게 된 분들도 많을 텐데요. 이미지 전환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선한 역과 악한 역, 둘 다 매력이 있어서 오히려 갈팡질팡하죠. 악역을 하면 선한 역할이 하고 싶고, 선한 역할을 하면 또 반대가 그립고요.”
결론: 임시완이 보여준 ‘불완전한 인간의 얼굴’
임시완이 연기한 명기는 우리가 평소 꺼려하던 ‘불완전한 인간’의 얼굴이다. 그는 악행을 저질렀지만, 그 안에 깃든 찌질함과 두려움은 우리 모두의 그림자를 비춘다. 단순한 악역을 넘어, 진짜 사람 같은 악역. 임시완은 그 복잡하고 미묘한 영역을 치열하게 탐색했고, 결과적으로 누구보다 생생한 캐릭터를 완성해냈다.
그의 다음 작품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